이집트 여행: 90세까지 장수한 최강의 파라오, 람세스 2세 신전 '아부심벨'
2025년 2월 15일부터 10일간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집트 여행은 출발 첫날부터 끝날까지 말 그대로 대장정의 여행으로, 무척이나 타이트한 일정이었으나 순간순간이 감동적이고 경외스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파라오', 람세스 2세, 아부심벨 등 수많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고대 신전들, 이들 모두 기원전 1200년 전 이상에서 건축된 건축물로 당시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여행을 하였네요.
이번에 이집트 여행을 하며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파라오는 이집트에서는 람세스2세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만큼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 왕조를 66년간 통치하면서 절대 왕국을 건립한 유일무이한 파라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90세면 장수연령으로 치는데 람세스 2세는 기원전 그 척박한 환경에서 90세까지 장수한 파라오로 자녀만 100명이 넘었다고 하네요. 그의 아들중에 13번째 아들이 람세스 3세로 즉위했는데, 이유는 12번째 아들까지는 모두 아버지 보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13번째 아들이 대를 이었다고 합니다. 람세스 3세 즉위 나이는 70대였다고 합니다.
이집트 여행 일정
인천 -> 도하 -> 카이로 ➝ ✈️ (새벽 2시에 기상해 비행기로 1시간여 이동) ➝ 아스완 ➝ 🚗 (4시간 차량 이동) ➝ 아부심벨 ⬆️ ⬇️ └── 🚗 (1시간 30분 차량 이동) ➝ 콤옴보➝ 🚗 (1시간 30분 차량 이동) ➝ 에드푸 ➝ 🚗 (3시간 차량 이동) ➝ 룩소르 ⬇️ 🚗 (4시간 30분 차량) ➝후르가다➝ ✈️ (비행기 이동) ➝ 카이로 -> 인천
이 일정 중에 여행 세쨋날, 아스완에서 이른 아침 차량으로 4시간 30분 이동해 도착한 람세스 2세 대신전과 그의 사랑하는 아내 네페르타리 왕비의 소신전이 있는 아부심벨. 이 모든 건축물들이 입을 다물 수 없으리 만큼 특별하고 감동스러운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아부심벨은 이집트어로 '立三佛'이란 뜻으로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최강의 파라오로 알려진 람세스 2세의 신전입니다. 사진에 4명의 입상은 모두 람세스 2세의 모습인데, 원래는 아름다운 채색이 입혀져 있었다는데 세월의 풍마로 지금은 색채감은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 자체도 충분히 아름답네요. 두 번째 상의 몸체가 파괴된 이유는 지진 때문에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채색이 벗겨지기 전 아부심벨 신전 모습의 복원도. 출처: 나무위키
여기서 잠깐! 람세스2세는 누구인가?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파라오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람세스 2세는 제19왕조의 세 번째 파라오로, 기원전 1279년부터 1213년까지 약 66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강력한 군사적 지도력과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바탕으로 이집트를 번영시켰으며, 웅장한 건축물과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의 통치는 이집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지금까지도 ‘위대한 파라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람세스 2세는 전쟁뿐만 아니라 웅장한 건축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부 심벨 신전을 건설하였습니다. 이 신전은 나일강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조각상들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태양이 떠오르는 특정한 날(2월 22일과 10월 22일)에는 신전 내부 깊숙한 곳까지 햇빛이 들어오는 정교한 설계로 유명합니다. 여기서 2월22일은 람세스 2세의 생일날, 10월 22일은 파라오 즉위식 날로 추정됩니다. 이외에도 그는 룩소르와 카르나크 신전을 확장하고, 자신의 장대한 신전인 람세움을 건설하여 이집트의 종교와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람세스 2세의 개인적인 삶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세티 1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군사적 훈련을 받으며 왕위를 물려받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의 왕비 중 한 명인 네페르타리는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인물로, 그녀를 위한 장대한 무덤(네페르타리의 무덤)이 건설되었을 정도로 람세스 2세의 애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왕비와 후궁을 두었으며, 100명 이상의 자녀를 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장수 또한 놀랍습니다. 당시 평균 기대 수명이 짧았던 점을 고려하면, 약 90세까지 생존한 람세스 2세는 이례적으로 오랜 삶을 누렸습니다. 그의 사후 미라는 현재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그의 유산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부심벨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인 성소에 있는 좌상입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프타(어둠과 창조의 신), 아문라(태양, 창조의 신), 람세스 2세, 라-호라크티(태양신, 하늘의 신)으로 람세스 2세가 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숭배되었음을 상징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매년 2월 22일과 10월 22일, 태양이 떠오르면 신전 내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좌상이 태양빛을 받아 환하게 빛납니다. 신기하게도, 이때 옆에 있는 아문라와라호라크티의 조각상도 함께 빛나지만, 어둠의 신 프타는 빛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설계로 추정됩니다. 이 현상은 고대 이집트 건축 기술의 정밀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조각상은 람세스 2세의 신격화, 태양신 숭배, 천문학적 설계가 결합된 상징적인 작품으로, 아부 심벨 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카데시 전투' 벽화는 아부심벨 사원 내부에서 중요한 장면을 차지하는 벽화 중 하나입니다. 이 벽화는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왕국 사이의 유명한 카데시 전투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카데시 전투는 기원전 1274년에 발생한 전투로, 이집트와 히타이트 간의 중요한 충돌이었습니다. 실제로 전투의 결과는 양측이 승패를 확정 지을 수 없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람세스 2세는 이 전투에서 자신이 크게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 벽화에서는 람세스 2세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서 싸우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네요
소신전은 아부심벨 대사원에서 약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입니다. 이 신전은 네페르타리가 중요한 신으로 숭배되었음을 기념하는 장소로, 네페르타리와 람세스 2세의 관계를 강조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람세스 2세는 아주 많은 왕비와 여인들을 두었지만 평생 가장 사랑한 여인은 첫 번째 왕비인 네페르타리였습니다. 그래서 소신전에서 네페르타리는 신격화되어 중요한 여신처럼 묘사됩니다. 람세스 2세는 자신의 왕비를 신성하게 존경하며, 그녀의 신격화를 통해 왕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신전은 네페르타리의 아름다움과 신성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기간 소신 전 공사가 있어서 관람을 통제해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어요ㅜ
아부심벨 사원은 원래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나일 강의 서안에 위치해 있었죠. 그러나 역사적으로 아스완 지역 나일강은 해마다 범람의 피해가 너무 극심해 60년대 이집트 정부는 아스완에 고온댐 건설을 결정합니다. 이로 인한 아부심벨이 수몰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와 협력하여 원래 위치에서 약 65미터 높이와 200미터 정도 뒤로 이동되어 지금의 모습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1964년-68년까지 진행된 이동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건축적, 고고학적 기술을 동원한 역사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사원은 절단하여 블록 단위로 분리한 뒤, 약 65미터 높이, 200미터 뒤로 이동했습니다. 이 작업은 50,000톤에 달하는 돌덩이를 수십 미터씩 옮기는 기술적 도전이었죠. 사원 이동을 위해, 건물의 벽, 기둥, 조각상, 내부 장식 등이 전부 잘게 분리되어 이동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지반에 안전하게 재조립되어 오늘날 아부심벨이 완성된 것입니다.
저는 이 설명을 가이드님께 듣고는 소름이 돋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부심벨 신전이야 말로 고대 신비한 건축술과 현대의 과학적인 건축기술의 합작품이 아닐까요
아부심벨 신전을 둘러싼 저 바다같은 호수가 바로 아스완댐으로 형성된 수몰지역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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